꿈을 쫒아 살아온 38년_도전, 좌절, 극복 체험기 1편 (대학, 그리고 군대)
대한민국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공부는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누구나 똑같은 교복을 입고 도시락 2개를 들고 다니면서 같은 고민으로 하루하루 살았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대학 입학은 인생의 첫 번째 관문이었으며, 그것을 뚫지 못하면 인생에서 낙오되는 것이었다.
난 꽤 젊잖고 온유하고 정해진 질서에 잘 순응해 가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고, 그냥 억지로 '자신을 이겨야 한다' 라는 군인정신같은 모토를 가지고 무난히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내 인생에 대한 의사결정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아버지 권고에 따라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입학하였다.
1학년 첫학기에 학사경고를 먹었다. 4년 내내 공부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진심으로 갈구하고 찾던 길이 아니었으므로 고교때의 압박감에 벗어난 나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리라...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야 했다. 당시 남학생 사이에서는 '남자라면 육군에 가야쥐 !!' 라는 근거도 없는 이상한 기류가 있었다. 학사장교니, 카투사니 너도 나도 해 보겠다고 하던 것을...난 시도조차 해 보지 않았다. 그리고 당.당.하.게 육군에 입대했다.
'1주일 딱 구르니까 아.. 그거 한 번 해 보기나 할 껄....'
하고 후회했다.
입대 당시, 아무런 주특기가 (심지어 운전면허까지도) 없던 상태였다. 논산훈련소에서 땅개로 기본훈련을 마치고 역시 논산에서 후반기 훈련(이것은 아무 주특기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으로 박격포 주특기를 부여 받고 훈련 받았다. 운전병이나 통신병 등은 주특기를 찾아갔지만...
남양주에 위치한 자대에 배치 받아, 예하 부대로 배치를 대기하고 있는 동안 한 기간병 왈,
"야.. 너희 그 신상명세서 글씨 잘 써라. 군대는 글씨야. 글씨만 잘 쓰면 풀린다 ㅋㅋㅋ"
모나미 0.7 볼펜을 부러질 정도로 꼬옥 부여잡고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갱지 위의 성명, 주소, 키, 몸무게 등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난....
얼떨결에 사단의 '모필병' 이 되었다.
사단에 하나 밖에 없다는 그 모.필.병 ! 사단의 얼굴이라고도 한다. 당시 인터넷도 없고, 워드는 하나워드를 썼으며, 각종 차트병들이 그 명성을 드높이던 그 시절. 모필병은 차트병과는 견줄 수 없는 존재였다. 붓으로 사단장 표창장을 써 내려가는 사람이다. 거기다 상황실의 상황판도... 심지어 부대 앞의 집채만한 돌땡이에다가 큰 붓에다 페이트를 묻혀 "초전박살" 이라고 새긴 적도 있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PC의 파워와 리셋을 구분 못하던 내 자대 동기가 2주 동안 밤에 끌려가서 작업하더니만 400타를 넘기던 그 시절, 난 점호 후 사무실에 올라가서 32면 일간지에 5cm 간격으로 줄을 그어 놓고 32면을 모두 붓으로 채워서 매일 아침 제출해야 했다. 이등병 그 시절 취약 시간인 새벽 2시-4시 경계근무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잠은 잘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 시절을 버틸 수가 있었는지...
하지만 붓글씨는 워드의 타자와 달랐다. 6개월을 그 삽질을 했는데도 글씨는 400타 나와서 여유를 찾아가는 내 동기처럼 내게 여유를 주지 않았고 나는 내 사수에게 밤마다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자포자기하여 '꼴통'으로 찍혀서 예하 연대로 내려가려고 잔머리까지 썼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군대는 어떤 곳인가? 1년만 지나면 군대가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1년 후, 내공이 쌓였던 것일까? 어느 순간 글씨가 나오기 시작했다. 뭐랄까... 감이 왔다고 해야 할까...갑자기 내 손이 신내림의 신공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역시 군대는 예외가 없구나... 1년이면 되는 것이었다 !!!
그 이후, 난 사단의 얼굴로서 사단에 한 사람 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그런 핵심인재(?)로서 자리 잡았다. 예하 연대에서 연대장이 뽀다구 나게 붓으로 연대장 표창장(당시 아래한글 2.1 궁서체로 뽑았었다) 좀 써오라고 연대의 중대장(대위)이 밤에 PX에서 먹을 것 잔뜩 사와서 비벼대곤 했다.
그리고 소장, 중장, 대장도 무섭지 않다던 '병장' 이 되었고 나의 군기는 빠질대로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일년에 두 번 밤샌다는 날 중 한 번인 '사단 창설 기념일' ! 행사 전날은 수십장의 표창장을 쓰느라고 밤 새운다. 밤 2-3시가 지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내가 병장일 때 사단장이 바뀌었다. 써내려간 표창장 중, 몇 장의 사단장 이름을 예전 사단장으로 써 버렸다. 행사 당일 아침까지도 몰랐다. 행사가 진행되면서 알았다.
'오.마.이.갓 ! X 됐다 !!'
행사 후, 난 여지 없이 두 명의 무식한 헌병놈에게 끌려가서 15일 영창을 살았다. (오해는 마라. 이거 무슨 범죄 기록은 아니다. 사단 영창이야... 뭐 아주 가벼운...)
상병 후반에서 병장 초반에는 난 스타였다. 왜냐하면 내 고참들의 연예편지를 써 줬으니까...
화선지를 세로로 접어서 우측열부터 좌측열 방향으로 붓으로 연예편지를 써 주곤 했다.
그렇게 저렇게 제대를 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말년에 뭘 할지는 모르겠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여전히 모르는 상태에서 복학하기조차 두려웠다. 그래서 막연하게 Vocabulary 22000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내 또래 말년의 대부분이 영어공부나 독서, 자격증 공부를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복학했다.
2편에 계속....